정제희 작가는 20대의 문턱에서 ‘이란’을 만났다. 신비한 분위기,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에 매료된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에 입학했지만 작가는 당시 학과 공부에 크게 흥미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쌀롬’하는 인사말 이외에 크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면서. 이런 그녀가 이란행을 결심한 것은 졸업을 한 뒤였다. 회사에 취직해 일을 하면서 이 삶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다시 이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직접 이란을 겪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이란에서 새로운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테헤란 나이트』는 작가가 ‘정제희’가 아닌 ‘비터’로 살았던 테헤란에서의 이야기다. 이 책에는 아직 한국이 만난 적 없는 이란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이란 음식들을 기다리며 독자들은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이란에 대한 호기심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독자들에게 작가는 자신이 아는 이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작가는 이란은 아랍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란에 대한 많은 오해들을 바로 잡고 싶어 했다. 전쟁이 벌써 20년 전에 끝났는데도 여전히 이란을 전쟁 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매일 같이 폭탄 테러가 터지는 곳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보며 늘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우리가 보는 신문에 늘 끔찍한 폭탄 테러, 납치, 간통죄로 신체 일부가 잘려나간 여성의 참혹한 모습 등만 오르내리기 때문에 이란에 대한 이미지가 나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뉴스만 세계적으로 알려진다는 이야기였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이란의 진짜 모습을 전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이란에서 만난 친구들 때문이었다. 꿈을 찾아 무작정 떠난 이란에서 힘든 순간마다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알려준 친구들. 평범하고 따뜻한 삶을 살아가는 이란 친구들마저 테러리스트로 바라보는 시선 앞에 서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진짜’ 이란의 모습을 전해주고 싶었다. 가만히 오래 바라보면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순수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모습을 말이다. 이란이 100% 안전하냐는 독자의 질문에 정제희 작가는 세상 어느 곳에나 나름의 위험이 있다는 말로 답했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국 역시 외국에서 보기에는 위험한 공간으로 생각할 수 있다며 말이다. 게다가 세계적인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의 서두를 보면 이란은 여행하기에 가장 안전한 나라이다, 라고 쓰여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말을 믿기 힘들어하지만, 그녀 역시 이란의 치안이 서울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행동 반경이 테헤란 북쪽의 부촌지역이고 외국인이라 관대한 대우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이란은 살인, 강간과 같은 범죄가 아니라 절도, 소매치기 같은 생계형 범죄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위험의 정도를 따져보면 서울에서 더 몸을 사리게 된다는 거였다. 그녀는 이란이 자신에게 엄마 품처럼 포근한 곳이라고 말했다.
작가의 말에 독자들은 놀란 표정이었다. 서울보다 더욱 치안이 좋은 이란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의아해하는 독자들에게 작가는 가끔 길을 걸을 때, 따라오는 아이들이나 남자들을 만난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 외국인이 신기해서 따라오는 것이라 경찰을 부른다고 말만해도 다들 우르르 도망간다며 순수한 사람들이라 말했다.
이야기가 막 무르익을 무렵, 식사가 준비되었다. 상으로 음식이 전달되는 동안 작가는 이란에서는 보통 바닥에 긴 천을 깔고 좌식을 한 채로 식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처음 보는 이란음식에 신기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정제희 작가는 이란이 무슬람이라 엄격할 것 같지만 그곳에서도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베이컨도 먹는다며 친근한 이란의 모습을 들려주었다. 곧 이어 작가는 이란 음식점 한쪽에 있는 문양을 가리켰다. 그것은 조로아스터교의 문양이었다. 현재 이란은 이슬람 정권이 다스리고 있으며 정치와 종교가 일치하는 구조라 이 문양을 금지한 상태이지만, 이란 사람들은 사산조 페르시아의 번영을 기억하게 해주는 이 문양을 꽤나 좋아한다고 말했다.
상 위를 하나씩 올라오는 음식들이 독특했다. 밥은 한국에서 흔히 보는 밥이 아니라 기름을 넣고 볶은 볶음밥들이었다. 또 찰기 있는 쌀이 아닌 안남미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란 사람들은 이렇게 볶은 밥을 또 한 번 버터에 비벼 먹는다고 했다. 샤프란을 넣어 볶은 밥 안을 흰 볶음 밥 위에 얹어서 냈는데, 이런 장식은 매우 흔한 것이라 했다. 수북하게 쌓인 밥을 헤집으니 밥 안쪽에 고기가 들어 있었다. 한 접시는 구운 닭고기가 들어있었고, 다른 한 접시에는 쿠비데가 있었다. 쿠비데는 고기를 갈아서 구운 것으로 우리나라 떡갈비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떡갈비가 갖은 양념을 해서 만드는 것과 달리 특별한 양념이 없는 고기 자체의 맛이 강하게 났다.
또 다른 메뉴로는 ‘눈’과 카레가 나왔다. ‘눈’은 밀가루에 별다른 첨가물을 넣지 않고 반죽해 화덕에 구워 낸 것이었다. 이 빵은 이란인들의 주식이라고 하는데 인도 음식점에서 먹던 난과 비슷한 맛이었다. 이란의 ‘눈에는 ‘바러바리’, ‘터프툰’, ‘샨가크’, 그리고 걸레빵이라 불리는 ‘라버쉬’가 있다고 한다. ‘바러바리’는 긴 타원형의 빵에 세로로 줄이 그어진 모양이고, ‘터프툰’은 조금 텁텁한 맛에 안이 비어있다. 산갸크는 돌화덕에서 구운 빵인데 바로 ‘산그’가 돌을 의미한다고 한다. 돌화덕에 구워 내면 돌 모양이 남아 ‘산갸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 한다. ‘라버쉬’는 이란의 거의 모든 요리와 함께 먹는 빵이라 한다. 아주 얇고 조금은 질기다. 이란인들은 이 ‘라버쉬’를 요리 밑에 깔아 내는데 양념이 베어 촉촉해진 이 ‘라버쉬’를 별미로 여긴다고 한다. 이란에서 ‘눈’은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지만, 정해진 때에 맞춰 가야 구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방금 화덕에서 구운 ‘눈’을 카레를 곁들여 먹었다. 현지에서는 다양한 잼, 혹은 우유와 곁들여 한 끼 식사로 간단히 먹는다고 한다. 이외에는 화덕에 구운 닭, 꼬치에 끼워 구운 양고기 시실릭 등이 나왔다.
독자들은 처음 맛보는 이란 음식들을 신기해하며 요리조리 살피다 이내 입맛에 잘 맞는다며 맛있게 식사를 시작했다. 음식을 먹는 동안 작가는 상 위에 놓인 피클과 단무지를 보며 사실 현지에서는 이런 음식 대신에 우리나라 김치에 해당하는 ‘토르쉬’라는 것을 자주 먹는다고 한다. 식초에 야채를 재운 음식인데 우리나라 장아찌와 비슷한 맛이라고 한다. 함께 나온 샐러드는 평범했지만, 새콤한 맛이 강한 소스가 뿌려져 있었다. 오이가 많이 들어간 것도 조금 특이했다. 작가는 이란 사람들이 오이를 좋아하는데 이란의 오이는 우리나라 오이의 반 정도 크기라고 했다. 이 오이를 과일처럼 아무런 조리 없이 그냥 먹는다고 했다.
음식을 먹던 독자들이 소스가 시큼한 맛이 많이 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작가는 이란 음식이 전체적으로 신 맛이 강하다고 했다. 그곳에서는 석류를 생으로 짜낸 주스도 많이 마시는데 그것 역시 이란의 대표적인 간식이라고 했다. 레몬 역시 생과일 주스로 자주 마신다. 이란의 수원은 기본적으로 석회가 포함된 석회수인데 신 음식들이 바로 이 석회성분을 중화해 준다고 한다. 디저트로 나온 것은 ‘라씨’였다. 사실 라씨는 인도식 음료여서 독자들 중 누군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자 작가가 자신의 음료를 내밀면서 마셔보라고 권했다. 그게 바로 작가가 따로 주문한 ‘두그’였다. 두그는 이란식 음료로 인도식인 ‘라씨’에 비해 덜 달다고 했다. 두그는 생요거트를 물에 섞어 숙성시킨 맛이다. 이란인들은 거의 매끼마다 생요거트인 ‘머스트’를 먹는다고 한다. ‘머스트’는 아주 순수한 요구르트인데 이 ‘머스트’에 잘게 다진 오이나 양파, 민트 등 채소를 섞어 샐러드로 먹기도 하고 빵에 찍어 먹기도 한다. 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독자들은 몇 번이나 두그를 맛보았다.
식사가 계속되는 동안, 이야기는 이란의 가정생활로 넘어갔다. 지금은 이란 사회도 맞벌이가 많고, 원하면 이혼을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과거와 달리 이혼율도 높아지는 추세라고 했다. 흔히 폐쇄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자유로운 부분이 많았다. 작가는 이란 여성들이 결코 남성에게 종속적으로 살지 않는다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부생활이 그렇듯 이란 여성들도 바가지를 긁고 이런 저런 불만을 늘어놓는다고 했다. 여성이 차도르 등을 써야 하는 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차도르만 쓰면 자유로운 나라가 이란이라 주변의 아랍국가에서는 가장 부러워하는 나라로 꼽는다고 했다. 이제 여성의 대학 진학률 역시 50퍼센트가 넘는 다고 했다. 계속되는 작가의 이야기에 독자들도 이란에 한번쯤 방문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이란에 간다면 놓쳐서는 안 되는 관광코스를 물었다. 정제희 작가는 이란의 산과 들이 좋아서 어디를 가도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꼭 이야기하자면 이란의 전통마을인 머슐레 마을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이 마을은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다고 했다. 유명한 문인과 학자를 배출한 쉬라즈는 지식의 전당이라고도 불리는데, 페르시아 제국의 국력을 실감하게 하는 여러 유적들이 남아있다고 한다. 또한 작가가 머물렀던 테헤란 역시 자유롭고 독특한 느낌과 이란 특유의 문화가 혼재된 분위기가 눈여겨 볼만하다고 말했다. 테헤란에 있는 커다란 재래시장은 중동 최대의 규모로 10km가 넘는 규모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카스피해 부근의 라쉬트, 람샤드, 찰루스 등도 휴양도시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고 했다. 후식으로 나온 라씨을 먹으며 독자들은 요즘 이란에서 유행하는 것들에 대해 물었다. 여성독자가 많은 까닭인지 옷이나 화장 등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이란 여성들 사이에 최근 대추야자 다이어트가 유행한다는 말에 독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원푸드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의 모습이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정제희 작가는 한국에서 화장이 점점 피부톤을 돋보이게 하며 화장이 드러나지 않는 방향으로 변하는 것에 비해 이란은 색조화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차도르를 쓰면 얼굴만 보이기 때문에 얼굴을 자극적으로 강조하는 화장을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스모키 화장으로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리고 색도 진하게 쓴다. 또 최근에 여성들 사이에서 선탠이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다.
이야기는 어느새 모두가 궁금해 하는 연애로 접어들었다. 한국처럼 누군가와 깊이 사귄다기 보다는 친구 같은 관계로 여럿과 두루 친하게 지낸다고 했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비슷한 정도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독자들의 의아한 표정을 보며 작가는 실제로 누군가 나를 좋다고 하면 ‘내가 몇 번째야?’ 하고 물어보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정말 몇 번째라고 대답도 해준다고 했다. 오히려 그런 방식으로 편안하고 건전한 관계로 지내는데 결혼은 이런 자유연애를 통해 정해지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집안에서 정해준 사람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연애를 할 때는 굉장히 로맨틱한 편이라 시를 직접 써서 주는 경우도 많고 사랑해라는 말을 정말 자주한다고 했다. 평소에도 이란 사람들은 조금 살가운 편인데 친구들에게도 모두 애칭을 쓴다고 한다. 보통 많이 쓰는 것은 내 영혼, 내 꽃 같은 표현으로 직역하면 한국에서는 어색하게 느끼지만 익숙해지면 그들의 따뜻함에 반하게 된다고 했다.
애국심은 높은 편인데, 우리가 아는 반체제적인 사람들은 사실 이란에서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 외의 사람들은 무슬림을 모두 형제라고 생각하는 전통이 있어 의식주의 많은 부분을 국가가 제공한다고 했다. 일인당 보조금도 많은 편이었다. 특히, 이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기름의 경우 모두 국민의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기름도 국가에서 나누어 준다고 했다. 그래서 이란에는 일인당 한 대정도로 차를 많이 가지고 있다.
식사를 모두 마치고 테이블이 정리되자 홍차가 나왔다. 라씨까지 마셨는데도 또 후식이 있냐고 묻지 이란에서는 홍차를 아주 좋아하고 자주 마신다는 답을 들었다. 차를 따를 때 흘리면 시집을 못간다, 같은 말이 있을 만큼 홍차가 친숙하다고 했다. 작가는 마치 한국에서 만두나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예쁜 아이를 낳는다는 말과 비슷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이란에서는 설탕을 홍차에 넣어 먹기도 하지만 설탕을 입에 물고 홍차를 마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차를 마시면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궁금한 점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